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기생충 리뷰 - 계급과 욕망, 블랙코미디로 그려낸 현대 사회의 민낯

by 토론토 2025. 5. 12.

기생충...포스터

불균형한 두 가족, 그 사이에 놓인 계단의 상징성

안녕하세요. 토론토입니다. 오늘은 영화 '기생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는 반지하에 사는 기택 가족과 고급 주택에 사는 박 사장 가족이라는 두 극단적인 계층의 삶을 교차시키며 진행됩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 두 가족이 물리적으로 위아래로 배치된 공간 구조를 통해 계급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전달합니다. 반지하 집의 좁고 습한 공간, 창문 밖으로 보이는 취객의 오줌줄기, 비 오는 날의 물난리 등은 가난한 계층이 일상적으로 겪는 현실을 사실감 있게 보여줍니다. 반면 박 사장의 집은 햇살 가득한 넓은 마당과 고급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으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은 언제나 깔끔하고 여유로운 모습입니다. 이 두 집을 잇는 유일한 통로는 ‘계단’인데, 이 계단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계층 상승 혹은 하락의 메타포로 작용합니다. 기택 가족이 박 사장 집에서 파티를 즐기고 난 후 폭우 속에서 반지하로 내려가는 장면은, 찰나의 상류층 경험 후 현실로 추락하는 모습을 극적으로 상징합니다. 이런 공간적 배치는 관객으로 하여금 단지 '가난한 가족이 부자 가족에게 기생한다'는 단순한 구도에서 벗어나,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게 합니다.

가짜와 진짜, 연기와 진심 사이의 모호한 경계

'기생충' 속 인물들은 모두 어떤 형태로든 ‘연기’를 합니다. 기우는 위조한 대학 재학증명서를 들고 과외 교사로 들어가고, 기정은 미술 치료사라는 가짜 신분으로 들어갑니다. 기택은 운전기사, 충숙은 가정부로 일하게 되지만 이들 모두는 가짜 신분으로 위장한 채 부잣집에 들어간 인물들입니다. 이 ‘위장’의 행위는 단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상류층 세계에 편입되기 위한 절박한 사다리이기도 합니다. 반면 박 사장 가족은 진짜 신분으로 살고 있지만, 그들 역시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좋은 아빠', '착한 사모님'처럼 외형적 역할에 갇혀 살아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상반된 연기들은 우리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가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특히 파티 장면에서 박 사장이 기택을 향해 '선은 넘지 말라'고 하는 대사는, 계급 간에는 절대 넘지 말아야 할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결국 진심보다는 역할이 먼저인 사회, 그리고 그 역할조차 얻기 힘든 이들에게 어떤 희망이 남아 있는지를 봉준호 감독은 묻고 있습니다. 이처럼 영화는 현실과 허구,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모호한 세계를 통해 한국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조명합니다.

폭력의 순간, 기생에서 괴생으로 변질되는 계급의 분노

영화 후반부, 지하실에서 살아온 전 가정부의 남편 근세가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급격히 바뀝니다. 그는 진짜 ‘기생충’처럼 박 사장 집에 숨어 살아왔고, 그 사실을 알게 된 기택 가족과 충돌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영화는 장르적 전환을 겪으며 블랙코미디에서 스릴러로 치닫습니다. 파티 날 벌어지는 살인 사건은 계급 갈등이 축적된 결과로 터지는 비극의 상징입니다. 특히 기택이 박 사장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장면은, 단순한 감정적 분노라기보다는 수십 년간 축적된 무시, 차별, 불평등에 대한 ‘반격’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박 사장은 지하실에서 시체 냄새가 나는 상황에서도 얼굴을 찡그릴 뿐, 사람의 죽음이나 고통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이러한 무관심은 기택이 결국 선을 넘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됩니다. 영화는 계급 간 불균형이 단순한 소외로 끝나지 않고, 폭력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경고합니다. 이는 단지 한국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 자본주의 구조 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 작품이 전 세계 관객에게 공감받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생충'은 결국 단순한 가난한 가족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인간의 존엄성과 계급의 폭력성, 그리고 구조적 불공정함에 대한 복합적 메시지를 담은 수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