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토론토입니다. 오늘은 2017년 개봉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을 소개합니다. 이는 김영하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알츠하이머에 걸린 전직 연쇄살인범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 영화는 기억의 혼란 속에서 진실과 환각을 오가는 서사를 통해 정체성과 악의 본질을 묻습니다. 연출적 기법, 플롯 구성, 배우들의 연기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해 장르적 재미와 철학적 문제의식을 동시에 전달하며 한국 심리 스릴러 영화 중에서도 특색 있는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기억의 왜곡과 서사의 구조
‘살인자의 기억법’은 치매 환자인 주인공 김병수(설경구 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기억의 왜곡이 서사 전개 자체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영화는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장면과 중첩되는 시점을 통해 관객이 주인공의 기억과 동일한 위치에서 혼란을 경험하게 만듭니다. 이는 신뢰할 수 없는 화자(Unreliable Narrator)라는 서사 기법을 활용한 것으로, 관객은 마지막까지 진실과 허구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이 구조는 관객의 집중도를 높이고, 단순한 범죄 스릴러 이상의 서사적 깊이를 제공합니다. 특히 특정 장면이 반복되거나 시간 순서가 뒤바뀌는 편집은 치매로 인한 인지 장애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이야기의 명확한 전달보다는 ‘기억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우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구성적 실험을 추구합니다. 이는 관객의 해석을 요구하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만듭니다.
인물 설정과 연기 분석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는 주인공 김병수의 캐릭터입니다. 그는 과거 연쇄살인을 저질렀던 범죄자이지만, 현재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노인으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설정은 도덕적 판단과 공감을 동시에 요구하는 복합적인 인물 구성을 만들어냅니다. 배우 설경구는 이중적 성격과 기억 혼란에 따른 내적 갈등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기존의 범죄 영화에서 보기 드문 노년층 주인공의 깊이를 부여합니다. 또한 의심의 중심에 있는 경찰 민태주(김남길 분)는 이중성을 가진 인물로, 그의 행적이 김병수의 혼란을 더욱 부추기는 구조를 취합니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 악의 정체에 대한 철학적 논의로 이어지며 영화의 주제를 강화합니다. 조연으로 등장한 은희(김설현 분) 역시 단순한 보호자의 역할을 넘어서, 김병수의 인간적 감정을 자극하는 요소로 기능합니다. 각 인물은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주제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며, 정형화된 캐릭터를 벗어난 구성을 보여줍니다.
현실 반영과 사회적 메시지
‘살인자의 기억법’은 단지 개인의 정신적 문제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기억과 망각의 문제를 제시합니다. 특히 주인공이 과거의 범죄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왜곡해서 떠올린다는 설정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가 불편한 진실을 망각하려는 경향에 대한 은유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경찰과 제도의 한계, 범죄자의 인권 문제, 고령화 사회에서의 노인 돌봄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요소가 스며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직접적으로 드러나기보다 이야기의 뒷배경으로 작용하며 관객의 사고를 유도합니다. 더불어 영화는 폭력성과 악의 본질을 단순히 범죄적 측면이 아닌 심리적, 철학적 차원에서 조명하며, ‘악은 기억될 수 있는가’, ‘기억이 사라진다면 죄책감은 소멸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는 단지 오락적 스릴러를 넘어서, 사회적 사유를 동반하는 영화로서의 기능을 부여하며, 국내외 평론가들로부터도 주목받은 이유입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범죄, 심리, 철학이 결합된 복합 장르 영화로,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매개를 통해 인간 본성과 사회 구조를 동시에 탐색합니다. 단순히 범인을 추적하거나 진실을 밝히는 영화가 아니라, 기억이라는 틀 속에서 인물의 정체성과 도덕성을 검토하게 만드는 독특한 접근이 특징입니다. 객관적인 구성과 연기, 연출, 사회적 은유 요소 등에서 영화적 완성도를 높인 이 작품은 한국형 스릴러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줍니다.